2020. 01. 01 새해 첫 날 아침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어릴 때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봤다. 등교시간이 13분이던 거리가 6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꿀돼지 문방구는 예전 그대로다. 무서운 주인 아줌마도 그대로였다.
가끔 동네에서 마주치지만 지금 봐도 무서워서 선뜻 인사는 하지 못한다. 속으로만 티 안나게 반가워할 뿐이다.
학교 구경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정문을 향해 내려오는데, 꿀돼지 문방구에서 주인 아줌마가 문방구의 오래된 철문을 잠그고 어디론가 가시는 뒷 모습을 보았다. 곰돌이 푸가 그려진 남색 책가방을 매던 쪼그만 아이가 어른이 되어 담배에 불을 켜고 아줌마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본다.
누가 뭘 훔쳐가면 ‘저 놈 시키 뭐 훔쳐갔다!’ ‘저 놈 시키 잡아라!’ 하시던 아줌마가 어제는 이해되지 않았다. 철없는 코흘리개인 조그만 초등학생 아이에게 너무 무섭게 대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길게는 초등6년을 볼 아이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려는 마음. 그 아이가 커서 학교를 찾아올 때, 반듯하게 자라서 과거를 돌아보고 웃을 줄 아는, 따뜻한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겉은 딱딱하고 속은 따뜻한 마음으로 20년 넘게 문구점을 지켜오신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이번에야말로 오랜만에 언덕길을 내려가시는 아줌마에게 "내가 이 학교 졸업생이에요, 예전에 먹던 떡볶이랑 과자들 덕분에 정말 좋은 추억이 많아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고 인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달려가려는 찰나,
내가 태운 뿌연 담배 연기가 사라지듯, 저 멀리 희뿌연 머리칼의 뽀글머리 아줌마도 이미 언덕 아래로 사라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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