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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은 결국 자기 만족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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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낮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아버지는 평일이라서 출근하셨고, 엄마는 급한 일이 생겨서 밥만 드시고 얼른 나가셨다. 동생과 나만 남았는데, 동생은 지(?) 먹을 것만 먹고 아무 말도 없이 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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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을 마저 먹고 나서도 혼자서 한 동안, 다 식은 고기를 조금씩 오물거리며 핸드폰 메모장에 뭘 끄적거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보니 40분이 흘러있었고, 문득 그동안 치우는지 어쩌는지 방 문도 열어보지 않은 동생에게 화가 났다. ‘형제의 난’이 시작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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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찬통 뚜껑을 모두 닫고,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는 소리가 들려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똥이 마려워서 나왔는데 타이밍이 맞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막 설거지를 하려던 참에 동생이 방문을 열고 아이패드를 한 손에 들은 채, 문 앞에서부터 바지를 내리고 말했다. “내가 치울게 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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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말이나 말지 언제 치울 건데? 똥은 한번 싸면 30분 넘게 싸는 놈이,,,)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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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불판을 닦고, 반찬을 다 냉장고에 넣고, 식탁을 닦았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참고로 난 평소에 설거지를 잘 안 한다. 엄마가 밖에서 볼일을 보고 들어오신 후에, 집안일을 하기에 많이 힘드실 거라 판단되면 미리 집안일을 조금 해두는 편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나치게 부엌을 엉망으로 해두면 전에 쌓여있던 그릇까지 다 치우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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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부엌이 지저분한 걸 보는 게 힘들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나갈 때 깨끗했던 싱크대가 갔다 와서 또 어질러져 있으면 기분이 정말 안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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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면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냥 그 자체의 행동이 좋아서, 혹은 그 사람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쟤는 왜 안 해?"처럼, '내가 하는 게 곧 맞는 거다'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하는 건 착한 일이라도 안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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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왜 안 치울까?", "들어가면서 이따 치울 때 불러라든가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면서 들어가면 될 텐데, 왜 그냥 들어갈까?", "당연히 내가 치우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일을 좀 덜어드리고자 굳이 놔두라고 한 설거지까지 하는데, 쟤는 왜 아무것도 안 하지?" 이런 생각은 내가 엄마를 위해 하는 행복한 선행의 본질을 더럽히고 있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받고 있는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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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생각을 접고 설거지에 집중했더니 정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띠룩띠룩' 살찐 뇌가 기다란 터널을 '터벅터벅' 걷다가 저 멀리 출구로 들어오는 바깥의 밝은 빛을 만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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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어느 한 부분부터 서서히 밝아지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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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좋은 일을 하면서 그 선행이 남들도 해야 하는 일로 생각되면 안 된다. 그냥 자신이 좋아서 하는 거고, 그 일로 자신이 행복해지고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리고 나도 모른다. 동생이 방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는지, 폰을 보며 놀고만 있었는지,, 그냥 쉬었다고 해도, 걔 한텐 쉬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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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먹고 나서 많을 걸 깨달았다. 엄마가 돌아오시고 설거지가 되어있는 걸 보고 좋아하셨다.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