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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 입니다

2편_이건 그냥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_성장과정, 성장일지

고등학교 3학년 선선한 봄바람이 불었다. 우리들은 하복을 입기 시작했다. 얇아진 교복을 입고 점심시간에 축구하는 또래 친구들과 운동장 테두리를 따라 걷거나 축구장 옆 귀퉁이에 마련된 농구장에서 농구하는 학생들, 그리고 야외 스탠드(계단)에 앉아있던 학생들을 보는데 그 날 따라 유독 그들이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우리 교실은 학교건물 5층이었고, 이는 일반 아파트의 6층 정도 되는 높이였다. ‘ㄱ’자 학교 건물의 세로부분에 우리 교실이 있었다.

 

 

학생들이 운동장과 스탠드, 농구장 등에서 점심시간을 만끽하며 지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1년 후에 성인이 되어 흩어질 우리의 미래를 그려봤다. 학교라는 틀안에 박힌 채, 아무것도 모르고 놀고있는 친구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무서운 사회에 나가기까지 채 1년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은것 처럼 보였고, 내가 그려본 우리의 미래는 유난히 맑았던 그 날 하늘과 대비되었다.

 

 

나는 이 틀에 갇혀 사회가 지시하는 평범한 길을 걷기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또래 학생들이 불쌍해 보였다. 내가 봤던 점심시간을 만끽하던 학생들은 사실 마냥 노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 2, 3, 4교시에 열심히 공부하고 다시 5, 6, 7, 8 교시를 마치고 짧은 석식시간을 보낸다음, 야자까지 집중해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에너지 비축 겸 스트레스도 풀어줄 겸 해서 나가있던 것이다. 나도 같은 이유로 점심을 먹고나서 창밖을 보며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대학을 진학하고 졸업하면 그것이 축복인 줄 아는, 좋은 대학을 가도, 좋은 직장을 가도, 노예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은 친구들이 불쌍해 보였던 것이다.

 

 

누구나 다 좋은 대학을 바라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노력한다면 목표했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각자의 시간과 노력에 배신당한 느낌이 들 것이었다. 하고싶은 것들을 참아가며, 때론 중요한 것을 포기해가며 노력해도 배신 당할 확률이 더 큰 게임인데, 정말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가장 쉽지도 않고 가장 안전하지도 않은 그저 보편적인 길일 뿐이기만한 공부에만 열중인, 또 그걸 알고있는 나조차 공부에 목숨 걸게 될 수 밖에 없던 용기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2011년 중1때 만든 내 비밀노트. 유명 모델이 되면 팬들에게 해주려고 싸인도 만들어 놨었다 ㅋㅋㅋㅋ 

 

 

우리들은 좀 더 나은 노예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거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학교에가고 밤 늦게 학교에서 나오고, 다시 학원으로 가서 자정까지 공부했던 것이다. 나는 고3때, 공부를 잘하면 성공하고 못하면 망한다던, 내 의사와 상관없이 미래가 정해진 그런 곳에서 벗어나려면 그 때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당시 중1때부터 가슴속에 꼭꼭 숨겨둔 진짜 꿈이던 ‘모델’을 시작하려고 마음 먹고, 어렵게 부모님께 말씀 드린 후에 부모님이 정보를 좀 알아볼테니 기다려보라고 하시는 말을 듣고 내 인생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었다.

 

 

어느 날, 야자가 끝나고 종합학원을 가지않고 밤 10시에 집으로 바로 왔다. 난 고3 때 종합학원과 수학교습소, 이렇게 학원 두 곳을 다녔는데 그 날따라 몸도 피곤했고, 종합학원 수업도 교습소에서 배웠던 내용 중에서 내가 가장 자신있던 단원을 하는 날이라서 나에게 선물 준다는 느낌으로 학원을 쨌다. 그렇게 도착한 집에는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은 냉기가 감돌았다.

 

 

엄마가 방으로 불렀다. 평소같으면 잘 갔다왔냐고 먼저 물으시는데, 학원 가는 날 아니냐고 물으시고 이유가 있어서 안갔다고 하니까 그냥 넘어가셨다. 그러곤 먼저 방으로 들어가셨다. 뒤따라 들어간 방에선 문을 닫고 모델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공부를 접기로 마음먹은 것은 현실에서 무산되었다.

 

19살 당시에, 모델을 시작하기엔 늦다고 판단했고, 지금 모델을 하다가 22살, 23살이 되어서 모델과 내가 맞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면, 공부를 다시 할 자신이 있냐는 엄마의 물음에 정말 솔직하게 못하겠다고 대답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공부해도 잘 할 자신은 없지만 이제 1년만 참으면 대학교를 수시전형으로 편하게 갈 수 있으니 대학부터 먼저 가자는 것이었다. 난 성적도 형편없지만 열심히 공부했던 세월이 아깝기도 했고, 공부도 다시는 할 자신이 없어서 모델의 꿈은 접었다. 그리고 정말 접은 줄 알았다.

 

 

 

(3편에 계속)